KBL 베테랑들의 농구일생(籠球一生)


11 May
11May

프로농구도 벌써 20주년을 맞았다. 기아가 첫 우승컵을 들어올린 97년 원년부터 시작해 그간 우리를 웃고 울렸던 수많은 장면들이 존재했다. 파릇파릇하던 신인 선수들은 어느덧 팀 내의 최고참이 되었으며, 그 중엔 은퇴를 몇 년 남겨두지 않은 선수들도 있다.


선수로의 기량은 20대 후반에 정점을 찍고, 보통 30대가 넘어가면 하락한다고 한다. 하지만 폭발력은 떨어져도 그에 반비례하여 노련함은 증가한다. 전성기와는 다른 플레이스타일로 영리하게 젊은 선수들을 상대하는 베테랑들의 모습은 흥미롭기만 하다.


리그에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던, 그리고 아직도 코트 위에서 즐거움을 안겨주는 레전드들. 이들의 커리어를 유년기-소년기-청년기-중년기-노년기로 분류해 정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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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의 역사’ 주희정


통산 8.3득점 3.3리바운드 5.2어시스트 1.5스틸

97-98시즌에 데뷔하여 20시즌 째 뛰는 중/한국나이 41세

유년기 : 주전경쟁에서의 문제와 어려운 가정형편 등으로 대학을 중퇴한 후 KBL에 데뷔했다. 그럼에도 데뷔시즌 평균 12점을 올리며 KBL 최초의 신인왕을 수상했다.


소년기 : 98-99시즌 삼성으로 이적한 뒤, 세 시즌 만인 00-01시즌 플레이오프 우승을 차지하며 그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주희정 본인으로선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하는 경사를 누렸다. 약점이었던 3점슛 성공률 또한 98-99시즌 28.1%에서 00-01시즌 38.6%로 대폭 상승했는데, 지독한 노력파인 주희정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사례다.
 
청년기 : 2005년 KT&G로 트레이드되며 유니폼을 갈아입은 주희정은 마퀸 챈들러, 캘빈 워너와 런앤건 농구를 구사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08-09시즌은 7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80표 중 53표를 받아 정규경기 MVP에 등극했다. 플레이오프 탈락팀 선수의 정규경기 MVP 수상은 20년 역사 속에서도 주희정이 유일하다. 이로써 명실상부 리그 최고 가드로 자리 잡았다.


중년기 : 시즌 종료 후 주희정은 우승을 위해 SK로 이적했지만, 팀 성적과 함께 개인 성적도 하락했다. 이 시점부터 점차 자신의 롤을 줄이고 식스맨으로 변신했으며, 13-14시즌에는 식스맨상을 수상하였다. 그 와중에도 본인의 8번째 트리플 더블을 달성하며 국내선수 최다 트리플더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노년기 : 10년 만에 친정인 삼성으로 복귀하여 올 시즌 51경기에 출장했다. 김태술의 영입으로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평도 있었지만, 플레이오프까지 종횡무진 활약하며 삼성 가드진에 무게감을 더했다. 노련한 경기운영과 결정적인 순간 터지는 득점포는 삼성 준우승의 원동력이었다. 올 시즌 세운 1500스틸과 1000경기 출전의 대기록은 그가 ‘기록의 사나이’임을 다시금 증명하고 있다.
임동섭은 8일 상무 입대 전 “제대 때까지 희정이 형이 선수로 뛰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주희정이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어 보인다.



‘한국농구의 보물’ 김주성


통산 14.5득점 6.3리바운드 2.8어시스트 1.5블록슛

02-03시즌에 데뷔해 15시즌 째 뛰는 중/한국나이 38세

유년기&청년기 : ‘최대어’로서 화려하게 프로무대를 밟았다. 선수생활 말년을 보내던 허재와 함께 팀을 최고의 자리에 올리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신인상은 이견없이 그의 몫이었다.
쾌진격은 멈추지 않았다. 03-04시즌에는 정규경기 우승, 플레이오프 준우승을 거두었고, 04-05시즌에는 기어이 TG 삼보를 리그 최정상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 신인상, 정규경기 MVP, 플레이오프 MVP 수상. 불과 3시즌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중년기 : 2007-2008시즌에 레지 오코사와 콤비를 이뤄 통합 우승을 이뤄냈고, 비록 무릎부상으로 불발됐으나 NBA 팀 토론토 랩터스의 FA 캠프 초청을 받기도 했다. 올림픽 최종예선에서는 강호 슬로베니아를 상대로 21득점을 기록하는 등 김주성은 거칠 것이 없었다.


노년기 :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김주성에게도 하락세가 찾아왔다.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점차 외곽으로 겉도는 경우도 많아졌고 고질적인 무릎 부상은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15-16시즌 1천블록과 4천 리바운드를 기록했으며, 올 시즌엔 통산 3번째 1만 득점까지 달성하며 화려한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는 김주성이다.



문태종

통산 13.2득점 4.2리바운드 2.3어시스트

10-11시즌에 데뷔해 7시즌 째 뛰는 중/한국나이 42세


유년기~청년기 : 리치몬드 대학을 졸업하고 이스라엘, 이탈리아, 러시아, 터키 등 유럽 리그에서 맹활약하였으며, 2006년 FIBA 유로컵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중년기 : 문태종은 한국 데뷔 때부터 모든 팀에게 주목받았다. 한때 자유계약 외국선수 영입후보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인데다, 1년 먼저 데뷔한 동생의 리그 최정상급 활약도 한 몫 했다.
유일한 불안 요인은 나이였다. 2010년 당시 한국나이 35세로, 웬만한 선수라면 이미 선수생활 말년에 해당하는 나이였기 때문.
허나 걱정도 잠시. 문태종은 데뷔시즌부터 클래스를 증명했다. 경기당 17.4득점을 몰아치는 활약으로 팀을 정규시즌 2위에 안착시키면서 '태종대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당시 헤어밴드에 ‘팬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적은 문구는 많은 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창원 LG로 이적한 이후에도 언제나 제몫을 하며 팀을 이끌었다.
 
노년기 : 문태종은 15-16시즌 FA자격을 얻어 오리온으로 이적했다. 40세가 넘은 나이로 풀타임을 소화하기는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3쿼터까지는 잠잠해도 4쿼터에 여지없이 한방을 터뜨리는 그다운 활약은 계속되었다. 15-16시즌 첫 우승을 맛본 이후 16-17시즌은 핵심 식스맨 요원으로 상황에 따라 투입되었다. 이미 이창수를 넘어 현역 국내 최고령 선수에 등극한 문태종이다. 태종대왕의 행보는 과연 어디까지 계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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