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의 투수놀음] 수비 시프트의 핵심은 투수의 '믿음'


04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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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 시프트의 핵심은 투수의 '믿음'


 오늘은 한 투수의 얘기가 아니다. 오늘의 주제는 시프트에 대한 얘기다.
SK의 트레이 힐만 감독은 최근 다양한 공격 작전과 수비 시프트로 KBO리그의 중심에 서있다. 오늘은 그 중 ‘시프트’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투수 코치를 했었던 나는 수비 시프트에 대해 궁금한 점들이 있었다. 시프트를 실패했을 때에 대한 것이다. 투수는 분명 수비가 제자리에 위치해있었다면 쉽게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게 되고, 이는 TV를 지켜보는 팬 입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기를 치를 때 나도 투수들에게 들었던 말이다. ‘시프트만 하지 않았으면 분명 잡았을 텐데…’


 그 때 투수들에게 시프트에 대해 설명하기 참 애매하다. 시프트가 성공한 적도 있으니 핑계 대지 말라는 말로 넘긴 적이 많았다. 하지만 납득시키기에는 부족해 더 좋은 대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넥센과 SK의 경기가 있던 날, 나는 중계차 문학 경기장에 갔고, SK의 힐만 감독에게 따로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시프트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힐만 감독은 투수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너무 궁금했고, 메이저리그, 마이너리그, 일본 프로야구까지 두루 섭렵한 감독이기 때문에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이 듣고 싶었다. 나뿐만 아니라 야구팬들이라면 분명 시프트는 왜 하고,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투수를 어떻게 설득 시키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부터는 힐만 감독과 나눈 시프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볼까 한다.

시프트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우선 투수의 마음가짐이다.


 투수가 시프트를 믿지 못한다면 해당 투수에게는 시프트를 사용한다는 것은 오히려 투수가 자신의 공을 투구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투수에게 시프트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것이 첫 번째라는 것이다. 이 얘기만으로도 이미 내가 생각한 질문에 대한 답은 다 나와있었다. 하지만 힐만 감독은 시프트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더 해주었다.


 두 번째는 투수에게 왜 시프트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는지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투수 뒤에는 4명의 내야수가 있다. 그 내야수는 모두 너(투수)를 돕기 위해 서있고, 시프트 역시 너에게 최대한 도움을 주기 위해 하는 작전임을 인지시키고 심리적 안정감을 줘야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시프트를 하기 전에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프트의 시행은 시프트를 적용하려는 타자에 대한 분석이 중요하다. 그 타자의 1,000개의 타구를 기본 베이스로 놓고 움직인다. 그리고 최소 200~300개의 타구를 토대로 타자에 맞게 시프트를 사용한다.
 
 투구의 속도와는 관계가 없다. 130km가 나오는 투수나 150km가 나오는 투수나 당겨 치는 타자는 그 공에 맞게 당겨 치기 때문이다. 사실 난 이 부분도 아주 궁금했다. 이유는 메이저리그는 기본 150km가 넘는 투수가 많기 때문에 기본 구속이 좀 느린 우리나라 투수들에게는 다르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투수가 시프트에 실패했을 때 설명할 말은 충분히 다 나왔다. 아니 그전에 벌써 투수들에게 정확한 자료와 근거를 가지고 설명을 해주었고 투수 역시 믿음이 생기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그림을 참고해보자. 타자가 1,000개의 이상의 타구나 최소 200~300개의 타구의 방향이 그림의 빗금과 같이 한쪽으로 치우쳐있다면, 내야 수비수들을 위와 같이 이동 시켜 시프트를 사용한다. 물론 수비가 서 있지 않는 방향으로도 몇 개의 공이 갈 수는 있다. 야구는 결국 확률 싸움이다. 확률적으로 빗금 친 부분으로 더 많은 타구가 갔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더 높은 쪽으로 수비를 모아 이동시킨 것이다. 이 때 6번은 유격수를 가리키는데, 유격수는 보통 그 팀에서 가장 운동신경이 좋고, 수비 능력이 뛰어난 선수로 배치해 가장 넓은 수비 범위를 커버하도록 한다. 


 때로는 감독의 성향에 따라 유격수와 3루수의 위치를 바꾸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그림의 빨간색 동그라미 쪽으로 파울볼이 나왔을 때 3루수보다는 유격수가 더 빨리 따라가고 파울 타구를 잡았던 경험도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의 동그라미 쪽에 파울이 나오는 경우는 한 경기에 많으면 2~3개이다. 그 2~3개의 파울볼 때문에 3루와 유격수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 좀 애매할 수 있다.


 물론 각각 감독의 성향에 따라 3루수와 유격수의 위치를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가만히 듣고 보니 2~3개의 파울볼보다는 더 많은 타구가 가는 쪽에 유격수의 위치를 놓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고 힐만 감독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시프트를 할 때 항상 살펴봐야 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기습 번트이다. 번트를 대는 타자는 위의 그림과 같이 3루수(5번)를 번트 수비에 대비해 위치를 옮긴다. 물론 투스트라이크가 되면 다시 시프트의 위치로 돌아간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체크할 것이 있다. 바로 초구에만 번트를 대는 타자인지 아니면 원스트라이크를 후에 번트를 대는 타자인지를 꼭 체크해야 한다. 이유는 그 때마다 시프트의 위치가 바뀌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바로 투스트라이크 후 타격의 성향이 변하는 타자다. 투스트라이크 전에는 풀스윙을 하면서 자신의 스윙을 하지만 투스트라이크 후에는 컨텍(맞추려는)을 하는 타자로 변하는 타자들이 가끔 있다. 이런 타자들을 모두 체크해 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성향이 변하는 타자 역시 그림과 같이 시프트를 하지 않고 원래 3루수의 위치로 옮긴다. 물론 끝까지 변하지 않고 자신의 스윙을 하는 타자가 있다. 그 때는 굳이 시프트를 깰 이유가 없다.


<SK의수비 시프트가 성공하는 장면>


 수비시프트를 할 때 투수나 미디어는 실패한 것만 기억하기 때문에 실패가 많아 보이지만 시즌이 끝나고 보면 실패 보다는 성공이 훨씬 더 많다.


 힐만 감독이 경기 내내 여러가지를 메모 하는 모습을 봤다. 그건 바로 때때로 타자의 성향이 변하는지를 체크해 메모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이외에도 다른 많은 것을 메모 하겠지만 말이다.


 그럼 시프트를 깨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시프트를 깨는 방법은 아주 쉽다. 바로 시프트를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시프트를 의식해 자신의 스윙을 가져가지 못하면 지고 마는 것이다. 자신의 강점은 당겨 치는 것인데 시프트가 있다고 밀어 치려고 하는 것은 벌써 자신의 강점을 버리고 경기를 하는 것이다. 자신의 강점을 버리고서는 좋은 타격을 할 수가 없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더 강하게 쳐서 시프트를 뚫는 것이 시프트를 이기는 방법이고, 내 강점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투수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믿고 신뢰가 쌓여야 더 좋은 야구를 할 수 있다. 시프트에 대한 질문에서 처음으로 나왔던 말은 투수의 ‘믿음’이라고 했다. 투수의 믿음이 없다면 시프트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시프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투구이다. 내 투구를 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시프트도 무용지물이다. 내가 오늘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서로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뢰와 믿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확실한 근거와 자료로 선수들에게 시프트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것이다.


 힐만 감독이 말한 여러가지 말 중에 “어느 나라 어느 문화건 벤치에서 선수에게 혼동을 주면 아무리 좋은 선수라도 경기장에서 그 선수가 가지고 있는 퍼포먼스(운동 능력)이 나오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은 시프트에 대해 이미 선수들과의 준비를 끝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만난 힐만 감독은 겸손했다. 그리고 공부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이야기가 끝난 후 내게 “언제든 찾아와 야구에 대해 공부하자”라고 말한 부분도 참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번에 내가 쓴 이야기는 힐만 감독의 자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미디어에 사용할 수 있도록 흔쾌히 허락해준 힐만 감독에게 지금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감사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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